지리학은 지구의 자연, 인간과 주변 환경 간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이는 지형이나 자원과 같은 물리적 측면뿐만 아니라 문화나 경제활동을 포괄하는 추상적 측면까지 모두 포함합니다. 이러한 물리적, 추상적 공간의 학문인 지리학은 활용과 연구 측면에서 그 역사는 고대 문명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인류의 문명과 함께해 온 매혹적인 학문인 지리학의 역사를 시간 순으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지리학의 탄생과 발전, 고대에서 중세까지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의 지역에서 발원한 문명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세계최초의 문명인 수메르 문명을 필두로 아카드, 아시리아, 고바빌로니아, 신바빌로니아 등 수많은 왕조들이 이 지역에서 흥망성쇠를 거듭했습니다. 이들은 지형에 대한 기록 및 지도를 만든 최초의 문명 중 하나입니다. 기원전 6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점토판에는 도시, 무역로 및 토지 측량에 대한 기본적인 지도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축척이 맞지 않거나 정확성이 떨어지는 등 한계는 분명히 있었지만 이들이 주변 세계를 이해하고 표현하려는 시도를 했었다는 사실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나일강과 그 주변 지역을 측량하고 지도를 제작했습니다. 나일강은 매년 범람하여 농업에 유리한 비옥한 땅을 만들어줄 뿐 아니라, 중요한 교통로 역할을 하여 서로 다른 지역 간의 무역과 교류를 촉진했기 때문에 지리학에 대한 이집트인들이 이해는 필수적이었습니다. 더군다나 고대 이집트의 지리학은 이런 경제적 이유뿐만 아니라 종교적, 문화적 측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집트인들에게 있어서 나일강은 신이 내린 신성한 선물이자, 자신들의 문명을 지탱하는 생명줄이었습니다. 이러한 영적 측면은 나일강의 기원에 관한 신화적 서사에서도 나타나며, 종교적 신념과 관습을 형성했습니다. 해마다 반복되는 나일강의 범람은 이집트 우주론의 핵심인 죽음과 재생의 순환에 영감을 주었고, 피라미드와 같은 건축물의 건설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리스 문명에서의 지리학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지리학의 과학적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이오니아 그리스인으로서 최초의 그리스 철학자로 간주되는 탈레스는 세계의 본질에 대해 몇 가지 초보적인 지도를 만들었습니다. 탈레스의 제자였던 아낙시만드로스는 세계 최초의 지도 중 하나인 원통형 도법을 제작했습니다. 역사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헤로도토스는 그의 저서 “역사”에서 이집트, 페르시아, 그리스를 포함한 세계의 역사뿐만 아니라 그 지역의 지리와 관습을 설명했습니다. 한편, ‘지리학(Geography)’이라는 명칭을 처음 만든 에라토스테네스는 기하학을 이용한 태양의 관측을 통해 지구의 둘레를 정확하게 계산해내기도 했습니다.
이후 헬레니즘 시대 스트라보는 “지리”에서 지역, 민족 및 지형에 대한 설명을 포함하여 그리스인에게 알려진 세계에 대한 포괄적인 개요를 제공했으며,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학”에서는 위도나 경도와 같은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지도 제작을 체계화하는 등 그리스 문명에 있어서 지리학의 전통을 집대성했습니다. 이러한 지리학적 업적은 이후 광대한 영토를 차지했던 로마 제국의 식민 통치와 행정의 기본 밑받침으로 활용되었습니다.
고대 중국의 경우, 지도 제작을 포함한 지리적 사상의 기원은 하왕조의 신화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시기에 산이나 강과 같은 지형 지물을 바탕으로 토지를 행정 단위로 나누는 ‘봉건’ 개념이 등장합니다. 이러한 개념은 통치 행위에 있어서 지리적 지형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반영했습니다. 이후 주나라 시기에는 농업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농업 생산성 향상을 위한 광범위한 토지 조사 및 지도의 제작을 동반하게 됩니다. 춘추전국시대에 공자와 묵자를 비롯한 철학자들은 인간과 자연환경 간의 조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거나 자원의 지속적 활용을 위한 실질적인 조사를 논하는 등 지리적 담론의 심화에 기여했습니다.
중국 역사상 최초의 통일왕조인 진나라의 진시황은 측량을 표준화하고 도로와 운하 등을 건설하는 등 영토 전반에 걸친 광대한 지리적 네트워크의 토대를 마련하여 중앙집권화의 중요 수단으로 활용했으며, 한나라 시기에는 제국 원정과 인근 지역으로의 외교 사절단 파견 등을 통해 지리적 지식이 확장되었습니다. 실크로드를 개척하고 동서 문화교류를 촉진했던 시기도 바로 이 때였습니다. 고대 중국의 발전된 기술력을 기반으로 한 지리에 대한 지식은 지도 제작 및 항해에도 혁신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나침반의 발명과 천문학의 발달을 통해 항해 기술에 혁명을 일으켰고, 제지 기술의 발달은 지도와 지리 문서의 제작을 촉진시켜 널리 지식을 전파하게 됩니다.
대략 5세기부터 15세기까지의 중세 유럽은 신학 중심의 세계관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지리학의 발달이라는 측면에서는 침체된 면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하지만 프톨레마이오스를 위주로 한 고전 지리 이론은 여전히 보존되고 연구되었으며 기독교 수도원은 지도 및 문헌 등의 사본을 보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동시에 고대 지리학의 여러 성과들은 이슬람 세계로 계승되어 연구되고 발전되었습니다. 특히, 12세기 지도학자이자 지리학자였던 아부 압둘라 무함마드 알-이드리시는 세계지도 및 관련 지리 서적을 편찬하였으며, 그가 제작한 세계 지도는 그 정확성과 세부 정보의 측면에서 전근대시대에 제작된 세계지도 중 가장 정확한 지도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또한, 14세기 이슬람 세계의 여행가이자 탐험가였던 이븐 바투타는 사하라 사막을 횡단하고 인도를 거쳐 인도네시아는 물론 중국의 만리장성까지 여행하며 지리학적 발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전반적으로 중세 지리학은 상대적으로 정확성과 체계적인 연구 방식이 부족하긴 했지만, 이후 이 분야의 발전을 위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이 시기 고전 지리 지식의 보존과 계승, 기독교와 이슬람교 등 종교적 신념의 영향, 무역과 탐험의 대상으로서 지리적 대상의 확장 등이 모두 당시 지리적 이해를 발전시킨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2. 지리학 도약의 시대, 르네상스부터 계몽주의 시대까지
르네상스를 거쳐 19세기에 이르기까지의 기간에는 탐험과 식민지개척, 과학 발전 등 시대적 배경을 기반으로 지리학 역시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우선 15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탐험의 시대에는 바스코 다 가마, 마젤란, 콜럼버스와 같은 탐험가들이 유럽인들의 입장에서 새로운 육지와 해양을 지도화하고 개척했습니다. 덕분에 지도 제작의 기술은 크게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나침반과 망원경 등 향상된 항해도구 덕분에 해안선과 지형지물을 더욱 정확히 지도에 옮길 수 있었고, 메르카토르와 같은 지도 제작자는 새로운 지도 투영법을 개발하여 항해에 더욱 유리한 지도를 만들었습니다. 나날이 발전하는 항해술을 바탕으로 유럽 열강은 전 세계에서 식민지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아프리카와 아시아 제국들을 식민지화하고 착취하기 시작했지만, 이러한 식민지화의 노력들은 동시에 새로운 지리학적 지식의 축적에 기여하게 된 아이러니를 낳게 되었습니다.
17세기 독일의 베르나르두스 바레니우스는 수학, 천문학의 경험과 자연 현상에 기본 원리를 둔 일반 지리학과 지지(地誌)에 중점을 두는 특수 지리학을 합쳐 근대 지리학을 확립했습니다. 이후 임마뉴엘 칸트를 거치며 지리학의 철학적 배경과 지리적 지식의 본질 탐구에 대한 중요성이 제시되었고, 알렉산더 프레드리히 본 훔볼트와 카를 리터에 이르러 과학적 방법론이 결합된 근대 학문으로서 환경결정론, 지역지리학과 같은 현대 지리학 개념의 토대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훔볼트는 자연지리학의 아버지로도 불리우며 오늘날 지리학의 계통적 원리를 수집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식물지리학과 등온선의 개념을 최초로 도입한 사람도 바로 훔볼트입니다. 한편 리터는 지표상의 객관적 자료 수집을 통해 해당 지역의 자료와 정보의 상호 비교, 그 과정에서의 해당 지역 특성으로서의 원리와 규칙을 찾는 것이 지리학의 목적이라고 여겼고, 지역지리학과 인문지리학의 발달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리터를 인문지리학의 아버지라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3. 지리학의 역할과 영향력
지금까지 고대부터 19세기까지의 지리학의 역사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았습니다. 지리학은 지구와 인간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촉진하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지형, 기후, 자원 및 문화적 특성을 조사하고 분류하며 발달해 온 지리학적 지식은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에 관하여 더 나은 이해를 제공했습니다. 지리학의 발전은 세계의 역사와 문화, 경제 및 정치적 변화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러한 영향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으며, 인류 문명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미래에도 지속될 것입니다.
'지리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물지리학의 여정: 지구 생물의 다양성을 밝히다 (0) | 2024.02.29 |
---|---|
문화지리학의 길을 걷다: 주춧돌과 이정표 (0) | 2024.02.28 |
자연지리학을 선도하다: 지형학 탐험 (0) | 2024.02.26 |
인구지리학,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열쇠 (0) | 2024.02.23 |
역사지리학의 탐구... 시간과 공간의 이중주 (0) | 2024.02.22 |